[TS물] 루트B-2 [한가인]

풀썩
한참 고민하고 있던 사이에ㅣ 갑자기 오빠(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눈 앞에서 실 끊어진 인
형처럼 쓰러졌다. 들을 것이 아직 산처럼 많이 남아있는데 갑자기 무너지듯 앉은 자세에서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려 미처 대응할 새도 없었다.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가?’
당황을 억누르며 일으켜 세워봤지만 마치 잠이라도 든 듯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니 단순히 잠든 듯 했다. 이미 반쯤은 믿고 있던터라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마음이 탁 맥이 풀렸다.
“휴우-”
“남매가 똑같군.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기분 나쁘게 한숨이라니.”
“힉!”
‘뭐...뭐뭐뭐, 뭐야?!’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
다. 아니, 그 이전에 목소리도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기 힘든 프로그래밍 된 듯한 목소
리라는 사실도 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정체모를 공포감이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되어 흘러내렸다.
“누...누구세요?”
“이쪽을 보라고 아가씨.”
“꺅!”
보이지 앟는 손이 내 턱을 강하게 움켜쥐고 모니터 앞으로 끌어당겼다. 오빠의 몸이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지만, 턱에 느껴지는 아픔에 그것까지 신경쓸 수는 없었다.
억지로 보게된 모니터는 기분나쁘게 꿈틀거리는 문자열이 어떤 사내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
다. 기분나쁜 무기질의 미소를 띄며 문자열이 꿈틀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난폭하게 해서 미안하군. 레이디.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사내의 말투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봐 봐! 이상한 놈이 나타나서 이렇게 해놓고는 갔다니깐.]

사내의 말투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어쩌면...이 사람이.’
오빠에게 들은 것은 짧은 말에 불과했지만 왠지 그럴듯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후엔 왠지 이 남자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자열의 얼굴이 풍기는 기분 나쁜 분
위기가 그 생각을 부채질했다.
“당신이 오빠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호오? 난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저녀석한테 들었나?”
“아뇨.”
“그럼?”
“감이에요.”
“푸하하하. 유쾌하군! 그래, 내가 했지. 거기다 특별히 에프터캐어도 해주려고 이렇게 온거
라고!”
문자열이 일그러지며 포효와 같은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몸을 가볍게 밀어 침대에 앉혔다. 문자열이 한 층 더 촘촘해지며 얼굴을 선명하게 그려냈
다.
“이거이거, 기대 이상이야. 간만에 유쾌한걸? 좀 위험하지만 즐겨야겠어.”
“무슨 얘기에요?”
“간단히 에프터캐어만 좀 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이지. 아까씨, 소원 없어?”
“오빠를 원래대로 돌려줘요.”
“그건 안되지. 대신 유용한 물건을 주지. 이게 있으면 좀 편할거야.”
허공에서 생겨난 녹색 보석을 얼떨결에 받았다. 순간 알 수 없는 지식의 파편과 영상이 머
릿 속을 파고들었다.
‘이건...오빠의 변화기록?!’
아니, 그렇다기보다 오빠가 다시 태어난 기록이다. 육체가 붕괴되 흔적도 없이 죽은 오빠의
혼을 새로운 몸을 만들며 안착시키는 과정의 ‘마법기록’. 이런 것을 본다면 환상이나 거짓말
로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란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때? 신기하지? 잘 해보라고. 그녀석보다는 재미있게 해주겠지.”
“이걸로 어쩌란거죠?”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할게 아닐까? 오빠를 네가 지키는거지.”
“...?”
“네 오빠를 노리는 녀석들이 있을거야. 잘 피해보라고.”
“무슨 말이에요?”
“노 코맨트~. 아차차. 이러려고 온게 아니었지?”
순간 터져나온 눈이 멀 듯한 푸른 섬광에 눈이 부셔서 질끈 감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는 알 수 없지만 그 남자가 뭔가를 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자, 다 됐으니 이만 가봐야겠군.”
“잠깐만요!”
“싫어, 영혼안착도 해줬으니 내 일은 끝이야.”
모니터의 문자열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용해진 방 안에
남은 것은 싸늘하게 식은 공기와 나, 그리고 편안한 표정으로 잠든 오빠뿐이었다. 꺼진 모
니터가 다시 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by 월신초 | 2009/10/20 15:15 | 허상 이야기(자작소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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