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물]반 쪽의 스피카-2

온 몸에 한꺼풀 검은 필름이 씌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그 광채를 잃고 희미한 어
둠 속에 잠겨있으며, 저는 꿈속을 거닐듯이 그러한 세상을 방황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어느것도 모호하게만 느껴져 실감이 나지 않아, 스스로 뺨을 꼬집어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반신을 잃은 것만으로 이러한
세상에 내팽겨쳐졌다는 사실보다, 영원히 잠든 누이는 이보다 더욱 가혹하고 무서운 세계에
홀로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 제게는 더욱 큰 공포였습니다. 어째서 제가 아니라 동생이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절 감싼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길 거부했습니다. 대신 저는....


‘난...뭘 하고 있는 걸까?’

빈소에 앉아 멍하니 영정사진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생각했다. 평소처럼 멍한 머리와 가슴이
사진을 보며 요란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사진은 시
인 자신의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영정과 나란히 놓인 자신의 사진에 시인은 복
잡미묘한 심정도 가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원인이 시연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계속 머리를 맴도는 의문에도 시인은 그것을 외면하며 멍하니 영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 또한 그런 시인의 분위기에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조용히 조문만 하
고는 빈소를 빠져나갔다. 간혹 찾아오는 요란한 조문객, 특히 시인 부모님의 옛제자들조차
시인에게는 말을 걸지 못했다. 그만큼 하얀 소복을 입은 시인의 모습은 살포시 쌓인 눈이나
새하얗게 타버린 잿더미 같아, 건드리기만해도 푸석하는 희미한 소리와 함께 공기 중에 흩
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덕분에 시인의 고민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방해없이 쭉 이어졌다.

늦은 밤, 조문객의 발길이 끊어졌음에도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이 앉아 있었다. 동
생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혹여라도 그 흔적을 하나라도 잃을 새라 필사적이던 시인은
또다시 조문객이 한 명 더 온 것을 겨우 눈치챘다. 고개를 숙인 탓에 양말신은 발만이 보이
던 조문객은 곧은 발걸음으로 정중하게 영정에 절을 했다. 어쩐지 감정이 절제라기보다 결
여된 듯한 느낌을 주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의 주인은 전혀 거리끼는 느낌 없이
시인의 앞에 와 섰다.

“가인양?”

‘...아, 날 부르는 거지.’

멍하니 있던 시인은 뒤늦게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깨닫고 완만한 동작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상대의 모습을 확인했다. 채 서른살이 되보이지 않는 젊은 남자였다. 물론
서른은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인은 동안이라고 생각했던 사내였다. 초등학교 졸업
할 즈음부터 중학교 졸업 전까지 줄곧 만나왔던 익숙한 정신과 의사였다. 아버지를 은사라
칭하며 정신과를 포함해 다양하게 남매와 마주했지만 근 반년 이상을 본 적이 없던 인물이
시인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은사의 장례식에 나타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기에, 시인은 침마저 말라붙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동해선생님....”
가인과 너무나도 닮아서 약간 높게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연기하며 시인은 힘없는
눈을 동해와 마주쳤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감정없이 미소짓고 있는 사내가 얼른 사라져
주길 원했다. 예전부터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꿰뚫어보는 사내가 시인은 껄끄러웠다.
“힘들겠군요.”
침묵으로 답하는 시인을 동해는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동해로서도 인연이 적지 않은 인물들
의 참혹한 사고에 마음이 쓰라린 눈치였다. 단지 은사의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돈도 되지 않
는 일을 몇 년간 해온 인물에게 시인은 고마움도 한켠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껄끄러워도 함
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저 들었던 시선을 다시 내림으로써 소극적으로 접근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애에게는 그 의사가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양복이 구겨지
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인의 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심산
이었다.
“아무도 없군요.”
자기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아니, 제 나이의 거의 절반 뻘인 시인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기
묘한 사내는 텅 빈 빈소를 보며 그대로의 감상을 말했다. 실제로 밤이 되어 몇 안되는 친척
과 부모님의 옛제자들도 돌아간 후였다. 반쯤은 시인이 내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이
다. 그런 한밤중에 찾아온 동해가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굳이 그런 것을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동해도 제풀에 지쳐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어쩔 생각이죠?”
“...네?”
갑자기 던져온 예상 외의 질문에 시인은 동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해의 날카로운 눈빛
에 압도되었다. 언제나의 느긋한 듯한 눈매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아올라 마음을 낯낯히
해부하는 듯한 감각이 시인을 괴롭혔다. 단지 눈빛 하나만으로 빈소의 가라앉은 공기가 달
아오른 칼날처럼 피부를 저며오는 듯 했다. 이런 눈빛은 생전 처음이라 시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인지 묻고있는겁니다.”
“...돌아가신 부모님하고 오빠 생각이죠.”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자못 슬프다는 것을 표현했지만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멈출 수 없
었다. 그래도 지극히 보통의 대답을 애써 목소리로 자아내서 대답했다. 그런 시인을 보며
동해는 한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입을 열어 치명적인 말의 비수를 벼려내었다.
“제가 묻고싶은 말은 자신의 장례식을 하는 이유예요. 시인군.”
그 말이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시인은 그 말에 평정심을 잃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때문에
대답하는 것이 늦어져 동해의 생각에 확신을 실어주었다.
“무...무슨 말이세요? 전 가인이라구요.”
“아뇨. 방금 전에 확신했어요. 시인군, 왜 가인양의 행세를 하는 거죠?”
이미 확신하고 있는 동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인은 동해의 이상하리만치 투명한 눈
빛에 압도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 사내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분위
기를 풍기며 다른 사람의 내면에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들어 비밀을 캐냈다. 저도 모르게 사
내에게 휘말려 말을 섞게된 시점에서 틀렸을 지도 모른다. 덕분에 이 연극은 생각 이상으로
일찍 끝나버리게 된 것 같았다.
‘연극...인가.’
자신을 포기하고-죽이고- 동생으로서 살아가고자 했지만, 동생을 ‘연기’한다고 생각한 시점
에서 잘못된 것일지도 몰랐다. 동생 그 자체가 되었어야했고, 자신이 곧 가인이였음에도 마
지막이 된 순간 동생과 자신을 구분지어 버린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역시였군요. 비정상적으로 변질된 자기애와
동일화, 텔레파시를 보이던 남매가 평범하게 자기의 반신이나 마찬가지인 남매의 죽음을 받
아들일리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언제부터 아셨죠?”
“처음 본 순간엔 긴가민가였지만 말을 한 순간 이미 9할 이상 확신했죠. 전 시인군 남매에
대한 모든걸 알고 있습니다. 착각하기도 쉽지 않아요. 애초에 두 사람의 상태를 치료할 수
도, 치료할 생각도 없이 방치하고 관찰한게 몇 년인걸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 동해에게 시인은 불쾌한 공포를 느꼈다. 그 미소가 어째서인지 이
해할 수 없는 초현실 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 미소가 곤충의 미소같고, 그 감정없는 눈이
무기질의 카메라렌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해는 그런 기색은 순식간에 피부 밑으로 눈
녹듯이 스며들게 하고는 평범하게 걱정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제 어쩔 생각이죠? 이런건 좋지 않아요.”
당연한 얘기였다. 언제까지고 속일 수도 없으며 이렇게 쌓아가는 거짓은 계속 곪아나가 언
젠가는 터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 될 것이 뻔했다. 이런다고 죽은
가인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은 시인 또한 전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매일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숨 쉬듯 느껴지는 상실감은 갈증처럼 시인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
지만 시인은 이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질끈 깨물을 뿐이었다.
그것을 보는 동해의 눈이 부드럽게 변했다.
“포기할 수 없나보군요. 어쩔 수 없죠.”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동해는 엉덩이를 툭툴 털고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내밀었다.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래도 정 하겠다면, 완벽해지도록 도와줄게요.”
그렇게 말하며 명함은 자신의 애인의 것이고, 그 애인이 운영하는 병원은 비록 불법이지만
실력 하나는 좋다며 언질을 해두겠다고 말했다. 마음을 정하고 각오가 선다면 가보라는 말
도 덧붙였다. 의사로서는 실격인 행동이었지만, 평범하지 않은 가치관을 가진 그였기에 가
능한 행동이었다. 더불어 그가 시인남매에게 가지는 호의는 그만큼 크고 깊은 것이었다.
동해마저 돌아가 빈소에 홀로 남겨진 시인은 명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
었다.

by 월신초 | 2009/10/28 16:09 | 허상 이야기(자작소설)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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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11/1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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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팝백 at 2009/11/24 21:38
섹스
Commented by 팝백 at 2009/11/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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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팝백 at 2009/11/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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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팝백 at 2009/11/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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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월신초 at 2009/11/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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